행복을 복지로 실현하는 부탄의 ‘국민총행복(GNH)’이란

부탄의 '국민총행복(GNH)'이란? 개념과 역사

 ‘행복’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국가 발전의 중심축으로 삼은 국가는 많지 않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히말라야 산맥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불교 왕국, 부탄(Bhutan)이다.

 부탄은 1972년, 당시 제4대 국왕이었던 지그메 싱게 왕축(Jigme Singye Wangchuck)이 “국민총생산(GDP)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 GNH)이다”라고 선언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발언은 단순한 철학적 주장에 그치지 않았다. 부탄 정부는 이후 수십 년에 걸쳐 ‘행복’을 정량화하고, 측정 가능하게 하며, 그 결과를 실제 정책과 국정 운영에 반영하는 실질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행복은 측정할 수 없다’는 일반적 통념에 도전한 것이자, 국민의 삶의 질을 객관화하고자 한 실험이었다.

 부탄의 GNH 철학은 물질적 풍요보다 심리적 안녕, 공동체 유대, 문화적 정체성, 자연환경의 지속가능성 등을 더 중시하는 가치 기반을 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복지 개념을 넘어 사회 전체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 삶의 모델을 제시하는 구조적 틀로서, 현재는 국제기구와 학계에서도 지속적인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GNH의 구체적 측정 기준과 구성요소

 부탄의 국민총행복 지수는 매우 체계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부탄 정부 산하 ‘GNH 센터(Gross National Happiness Centre)’와 ‘국가통계국(NSB)’은 2010년부터 정기적으로 GNH 조사를 시행하고 있으며, 측정 방법은 다음과 같다.

번호	영역	주요 항목 예시
1	심리적 안녕	삶의 만족도, 정서적 안정, 영적 실천
2	건강	신체 건강, 수면, 의료 접근성
3	교육	문해력, 교육 수준, 평생학습 기회
4	시간 사용	노동과 휴식의 균형, 여가시간
5	문화 다양성과 회복력	전통 보존, 문화 행사 참여
6	좋은 통치	정부 신뢰도, 부패 인식
7	공동체 활력	가족/이웃 유대, 사회적 신뢰
8	생태 다양성과 회복력	환경 보호 참여, 쓰레기 처리
9	생활수준	소득, 직업 안정성, 주거 상황

출처: Bhutan GNH Centre, 2024 Annual Report

 

 이 9개 영역은 다시 33개의 지표로 세분화되고, 150개 이상의 설문 문항으로 구성된다. 조사는 전국 단위로 이뤄지며, 응답자의 심리적 안정감부터 여가활동 시간, 공동체에 대한 만족도, 생태보존 활동 참여도까지 매우 구체적이다. 조사 결과는 단순한 통계자료로 남지 않는다. 개인의 삶이 어느 영역에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파악하여 맞춤형 정책을 설계하는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공동체 유대가 약한 지역은 지역 커뮤니티 센터 설립을 지원받고, 문화 정체성이 낮은 지역은 학교에서 전통 무용이나 불교 철학 교육이 강화된다. 

국민총행복이 정책에 반영되는 방식

 부탄은 GNH를 국가의 핵심 지표로 설정했을 뿐 아니라, 정책 설계, 입법, 예산 집행, 공공 서비스 개발 등 모든 행정 분야에 GNH 철학을 내재화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GNH 정책 스크리닝 시스템(GNH Policy Screening Tool)’이다. 이 시스템은 모든 정부 정책을 사전 검토해 국민 행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아래 정책 적용 실제 사례 3가지를 소개한다.

 

1) 고속도로 건설사업의 중단

 2012년, 부탄 정부는 수도 팀부(Thimphu)와 동부 지역을 연결하는 대형 고속도로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환경 파괴와 공동체 분열 가능성이 높다는 GNH 위원회의 평가에 따라, 해당 사업은 중단되거나 노선을 전면 재설계했다.
이는 GDP 기준으로는 ‘개발 지연’이지만, GNH 기준에서는 공동체 안전과 생태 보존을 더 중시한 선택이었다.

 

2) 교육정책과 ‘행복 교육’

 부탄의 학교는 단순한 지식 전달 기관이 아니다. 모든 공교육 과정에는 ‘행복 교육(Values-based Education)’이 필수로 포함되어 있다. 학생들은 아침마다 명상과 감사 인사를 나누며, 정규 과목 외에도 명상, 윤리, 불교 철학, 지역 문화 수업을 병행한다.
이는 ‘시험 점수’보다 학생의 정서적 안정과 공동체 의식 함양을 중시하는 정책의 결과이다.

 

3) 기업 경영과 GNH 인증제

 부탄 정부는 민간 기업에도 GNH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GNH 비즈니스 인증(GNH Business Certification)’ 제도를 통해 환경 보호, 직원 복지, 지역사회 기여 등 GNH 원칙을 준수하는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지속 가능한 생산방식을 채택한 수공예 기업은 세금 감면과 수출 허가 혜택을 받는다. 

한국 복지 제도와의 비교 및 시사점

 한국은 세계적인 경제력을 갖추고 복지 예산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삶의 만족도와 정신적 행복지수는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23년 기준 OECD 회원국 중 한국의 행복지수는 35개국 중 33위, 자살률은 1위라는 통계는 물질적 풍요와 국민 행복 간의 괴리를 보여준다. 이와 달리 부탄은 세계 행복보고서(UN World Happiness Report)에서 상위권에는 들지 못하지만, 자국민 조사에서는 91%가 행복하다고 응답한다. 이는 통계적 신뢰도와 상관없이, 정책이 국민 개개인의 삶에 실질적 긍정 영향을 주고 있다는 반증이다.

지표	한국	부탄
GDP 순위	10위	130위권
자살률	OECD 1위	매우 낮음
국민 행복도	하위권 (국제 조사 기준)	91% (자국 기준)
복지정책 방향	경제성장 기반	삶의 질 기반

출처: UN World Happiness Report, 부탄 GNH 센터, OECD, 통계청

 

 한국은 이제 양적 성장뿐 아니라 정성적 복지 모델을 병행 구축할 필요성이 있다. 부탄처럼 문화, 공동체, 생태, 정신적 안녕까지 아우르는 GNH 기반 모델은 단순 모방이 아닌 지속 가능한 복지철학 수립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요약하면..

 부탄은 GDP보다 국민 삶의 질을 우선하는 국민총행복(GNH) 철학을 국가 정책 전반에 반영한 대표적인 사례다. 부탄의 GNH는 9개 영역과 33개 지표, 150개 설문 문항을 통해 국민 행복을 정량적으로 측정하며, 교육·환경·경제 정책에 직접 반영된다. 고속도로 건설 중단, 행복 교육 도입, GNH 기업 인증제 등은 실제 정책 실행 사례다. 부탄 국민의 91%가 행복하다고 응답한 자체 조사 결과는 GNH 정책의 효과를 보여준다. 한국 복지제도와 비교할 때, 부탄은 경제적 수치보다 공동체와 정서적 안정, 생태 회복력을 중시하는 지속 가능한 복지 모델을 제시한다. 이는 단순한 물질적 복지에서 벗어나,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정성적 행복 중심 복지 패러다임 전환의 시사점을 제공한다. GNH 모델은 행복지수, 지속가능한 개발, 공동체 가치, 교육 복지 등 키워드에 관심 있는 독자와 정책 입안자에게 실질적인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